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더라도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겠다고 다짐했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언제나 네 편이 되겠다고 그리 다짐했다. 사랑하기도 아까운 시간들을 타인의 시선에 벌벌 떨며 보내지 않겠다고, 오로지 너만을 위해 살겠다고.
네가 그러는거,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순간 너의 눈동자에서 빛이 일렁거렸다.
넌... 넌 그럴 수 있겠지만 난 못 해. 대현아.
목이 메인 듯 말을 살짝 더듬으며 너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건 아냐. 중얼거리듯 말하며 너는 고개를 떨구었다.
매끈하게 다듬어놓은 손톱은 동글동글했다. 손 끝을 만지작거리면 너는 간지러운 듯 웃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야, 하지마. 킥킥거리는 웃음이 섞인 너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하지말라고 하면서도 너는 손을 빼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런 네게 입을 맞추고 싶었다.
목이 망가졌다고 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목소리가 갈라져 쇳소리가 났다. 너는 계속 울었다. 그렇게 울면 더 안 좋다고 몇 번이나 말려보았지만 너는 그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무력했다.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너를 행복하게 해주기는커녕 네 눈물조차 멈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울음을 그친 순간, 우리의 끝을 예감했다.
나는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는 평소와 다름없는 별 표정없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본다. 새파란 달빛에 네 얼굴이 창백했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왈칵 솟아오른 눈물은 그대로 네 뺨으로 뚝뚝 떨어져내렸다. 너는 가만히 나를 올려다 보다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뜨겁다.
뜨거워 영재야.
너는 가만히 팔을 들어 내 눈가를 닦아내었다. 네 손끝이 서늘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너는 그저 내 밑에 누운 채로 내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울지마 영재야. 네가 부르는 내 이름이 마치 주문 같아서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널 행복하게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널 울리지도 말아야 하는데.
그 말에 나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너의 위에 그대로 엎드려 너의 작은 머리통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해. 미안해. 그 말만을 되뇌이며 나는 울었다. 너는 이렇게나 좋은 사람인데. 나는 나는. 내 등을 감싸 안아 두드리는 네 손길을 느끼며 나는 그저 울기만 했다.
고개를 들면 잿빛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리 없이 춤추듯 내려앉는 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몇 발자국 앞에서 걷고 있었다. 뒤를 돌아봐줬으면 하고 바랬는데 너는 뒤돌아보지도, 멈춰서지도 않았다. 너는 결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소리쳐 너를 부르고 너의 발걸음을 붙잡고 너를 뒤돌아보게 하고 싶은데 아무리 외쳐도 소리가 네게 닿지 않는다. 나는 너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내리는 눈이 조금씩 쌓여간다. 잿빛 하늘, 새하얀 눈, 모노톤의 너. 흑백 무성영화 속에 갇혀버린 듯 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건 꿈이라는 것을. 하지만 꿈에서 깨어봤자 네게 닿을 수 없는건 매한가지이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가 없다. 현실에서 가능성 없는 사랑을 꿈에서조차 이룰 수 없다는건 괴롭다. 그렇지만 나는 매일 너의 꿈을 꾼다. 꿈에서도 너를 본다.